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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흔한 18세 남고딩의 로맨스 데이 04 방탄소년단 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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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흔한 18세 남고딩의 로맨스 데이 04
W. 국빛


"그래서 그 시간까지 남아있었으면서 범인을 못 잡았단 말이야?"
"응! 짜증 나!"
"푸핫, 너희 뭐한 거야. 옆에 정국이도 있었잖아? 정국이도 못 봤어?"
"어? 응. 일단 김태형은 나한테 기대서자고, 난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이미 칠판에 답이 쓰여 있더라고."


어쩐지 정국의 등 뒤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것 같다. 사실 학교 측에서 마련한 그 화이트 보드, 처음에는 반은 장난이고 나머지 반은 진심으로 쓰기 시작한 건데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한데 옆에서 씩씩거리던 태형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려서 마음이 더 좋지 않다. 그래서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야말로 그만두기로 했다. 정국이 그런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하나였기 때문에. 도통 어린 시절부터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태형이 얄밉기도 하고 애가 타기도 해서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일종의 시위 같은 걸로 하고 있던 중이니까.


하지만 점점 노골적으로 쓰여지는 답으로 인해 태형의 성격이 날로 포악해지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러고 있는 거냐며 씩씩거릴 때마다 정국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어 지금도 애써 옆과 앞에서 칠판맨에 대해 재잘거리고 있는 태형과 지민의 대화를 무시하려고 애쓰고 있다. 저걸 듣다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사실 그건 내가 썼다고 다 불어버릴 것 같았으므로. 윽, 진짜 나중에 들키면 나 죽는 거 아닌가 몰라.


....그래도 김태형 잘못이다, 뭐. 전정국이 이렇게 좋아 죽겠다고 티 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태형만 모르고 다른 사람 다 아는데 김태형만 몰라주니까! 김태형이 너무 예쁜 잘못이야. 내 잘못은 없다고. 정국이 콧방귀를 뀌었다. 아마 태형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정국이 자신이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혼을 갈아 넣고 날림 글씨로 답을 쓰는지. 필체를 보면 정국의 글씨라는 걸 알아차릴까 싶어서 기회를 봐 빠르면서도 자신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필체를 완전히 바꿔서 쓰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해서라도....


전정국이 김태형을 이렇게나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은 거라고.


***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했는가. 그 비밀은 오랫동안 지속할 것 같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 그것도 정국의 입으로 직접 그게 나라고 얘기한 것도 아니고 뜻밖의 인물이 정국을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윤기. 이 모든 속사정을 다 알고 있는 그는 인생을 전정국 놀리는 맛으로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올라와서 지민을 포함해 셋이서 방과 후에 PC방을 가네 마네하고 있었는데 교실 앞문에서 비스듬하게 서 있던 윤기가 정국을 불렀다. 그걸 보고 태형이 지민에게 눈짓한다. 그러자 지민이 그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듯 씩 웃으며 벌떡 일어난다. 가자, 전정국 감시대 출동!


그렇게 해서 여기에 왔는데,


"너 그거 언제까지 비밀로 할 거냐?"


뭐가 비밀이라는 건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구석에 숨어 보고 있었는데,


"차라리 깔끔하게 불어버리는 게 낫지 않아? 너 요새 존나 유명해졌더만. 전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런 얘기가.


"칠판맨."


윤기가 픽 웃으면서 정국을 보며 칠판맨이라고 하자 태형과 지민이 동시에 경악한다. 가장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칠판맨이라니. 지민은 진짜 전정국이 칠판맨이었어? 이 수준에서 그쳤지만 태형의 낯빛은 점점 좋지 않다.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그동안 자신이 그 칠판 때문에 어디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다 알면서, 자기가 그 칠판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정국이 제일 잘 알았다. 그래, 가장 잘 안다는 놈이 그런 짓을 했다 이거지.


....얼마나 우스웠을까. 곁에서 제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던 놈인데, 그 범인 한 명 잡겠다고 불철주야 눈에 불을 켜고 있던 제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범인 잡겠다고 했을 때 잘해보라며 엎드리면서 속으로 얼마나 웃었을까. 자꾸만 삐뚤어진 마음이 생긴다. 정국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 것도 여전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정국이 그랬다는 것에 태형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걸 보고 힐끔거리며 눈치 보던 지민이 생각했다. 이거, 완전 좆됐네....


"내가 태형이라면, 그 얘기를 나중에 들으면 존나 빡 칠 것 같은데."
"....그래요?"
"그렇지. 걔 성격상 그거 쓴 놈 잡겠다고 악을 썼을 거 아니냐. 안 봐도 비디오지. 그 욱하는 성질머리가 어디 가겠어? 차라리 그냥 일찍 얘기하는 게 낫지 싶다."
"김태형에 대해 엄청 잘 아네요. 나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걔 어릴 때부터 봐온 사람 중 한 명이 난데, 그럼. 돕고는 싶은데 생각해 보니 나중에 뒷감당할 때 나한테까지 불똥이 튈 것 같으니까 그렇지. 나 귀찮은 거 사절."
"그럼 안 도와줘도 돼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거기까지 해, 그만 얘기해. 이 미친놈아...! 지민이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뱉고 싶어 안달 난 듯했다. 옆에서 점점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고 있음이 뻔히 보이는 태형을 보면서 눈치만 보던 지민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정국은 지금 상황이 이렇다는 것도 모르고 윤기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조잘거리고 있음에 이럴 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처세술을 먼저 생각하고 있던 지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오지 말걸. 중간에서 굉장히 피곤해질 것 같다. 태형의 눈에서는 이미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고 몸 주변으로 불꽃이 튀는 것 같은 환영이 보일 지경인데 저 인간들의 대화는 언제 끝나는 걸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같은 태형을 힐끔 본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윤기와 정국을 번갈아 본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게 좋았지.


"칠판.... 일단 그거 계속, 쓸 거예요."
"그렇게까지 해야 돼?"
"....내 마음 전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매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답답한데 나는 김태형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라도."


들려오는 말에 결국 태형이 폭발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만류하는 지민의 손길도 뿌리치고 전면에 나선다. 정국과 윤기의 앞으로. 생각지도 못한 태형의 등장에 놀란 건 둘 다인 것 같다.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얘가 왜 여기 있냐는 듯한 얼굴로 보다가 윤기는 이제 난 모르겠다.... 하면서 너희끼리 잘 풀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버린다. 지나가다가 숨어있던 지민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지민의 목덜미에 팔을 걸어 질질 끌고 갔지만. 어린 애들은 저런 거 보는 거 아니에요.


"하하."
"김태형. 네가 왜 여기, 아니.... 혹시 들었어?"
"뭘?"
"아, 못 들었...."
"네가 칠판맨이라는 거?"
"......."
"재미있었냐? 그동안 내가 그걸로 스트레스 받는 거."
"태형아. 내 말 좀 들어 봐."
"뭘 들어. 더 뭘 듣는데. 너 얼마나 재밌었어? 내가 그 새끼 잡겠다고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거 보면서 얼마나 재미있었어? 무슨 생각 하고 있었냐? 날 엿먹이고 싶었던 거면 차라리 듣기 싫은 욕이나 실컷 하지, 전교생 앞에서 망신 주면서까지 그러고 싶었냐?"
"김태형. 내 얘기 좀,"
"시끄러워! 들을 얘기 없어, 듣고 싶지도 않아! 내 제일 친한 친구라는 놈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너 내가 물었지, 너 아니냐고! 너 그때 뭐라고 했어? 나랑 같이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아니라고 했잖아. 거짓말도 했네?"


평소라면 말도 조금 더듬고, 횡설수설 제대로 하지도 못하던 태형이 정말 화가 많이 났는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잘도 말한다. 그 말 하나하나 전부 정국의 가슴에 비수가 된다.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런 의미로 한 게 아니라고. 태형이 곤란하게 하려고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태형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별명이 김스치면 인연, 이라고 할 정도로 성격이 밝고 붙임성도 좋고 귀여워서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게 태형이다. 살면서 김태형을 싫어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타인과의 트러블도 그리 많지 않아서 화를 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런 사람이 정국에게 이렇게 화를 낸다는 건 잘못하면 끝을 말한다는 것. 그만큼 좋은 사람이면서, 한 번 아니면 영원히 아닌 구석이 있으니까. 그래도 애써 힘겹게 입을 뗀다.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입이 제멋대로 말을 뱉어낸다.


"....넌.... 나 안 좋아하잖아."
"뭐?"
"내가.... 이렇게 널 좋아해도, 너는 아니잖아."
"뭐라는 거야, 씨발. 제대로 설명해."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널 좋아했어. 너 조금 전에 윤기 선배랑 얘기하는 거 다 들었으면 알 거 아냐."
"그래서 이런 짓을 한 거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어떡하라고, 나는!"
"......."
"그래. 미안해. 너 얼마큼 스트레스받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제일 잘 알아. 항상 옆에 붙어있었으니까. 왜 몰라, 그걸. 그래도 난 어떡하라고. 그런 마음을 가져도 너한테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는데, 그렇게 답답했는데.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데도 너한테.... 좋아한다고 말을 할 수가 없으니까.... 방법은 틀렸어. 그건 인정해.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널 좋아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었어."


기가 막힌 듯 하,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그 진심은 태형에게 다 닿지 않았나 보다. 그러지 못했나 보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낼수록 더한 힘을 가진다는 걸 정국이 모를 리 없다. 태형이 화내면 더 그렇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간절했다. 매일 상상했다. 태형에게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고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고백하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래도 영원히 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말하면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 관계조차도 깨질 것만 같으니까. 그래서 비겁하게 한발 물러서서 행하는 그런 방법을 택했다. 사실 정국도 약간 철이 없다 싶은 게, 처음에는 정말 반은 장난으로 썼던 일. 그게 이렇게 큰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후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태형에게 표현하고 싶다는 게 밖으로 표출돼서 일어난 일.


화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반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 정체가 전정국이라고 떠벌릴 생각도 없지만, 밀려오는 배신감에 저절로 몸이 떨렸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게 태형에게는 좋아한다고 고백한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에게 수치심과 놀리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화가 난 상태에서는 정국의 마음이 보이는 게 더 이상하다. 결국 태형이 정국에게서 등을 보인다.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경멸하는 표정과, 돌려버린 등에 정국이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태형아...."
"......."
"가지 마. 너 이렇게 나한테서 등 돌리고 가 버리면 난 어떻게 해야 돼."
"....내가 묻고 싶네. 내가 널 어떻게 해야 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 마음 알아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가지 마. 너 지금 여기서 가게 내버려 두면 평생 못 볼 것 같아."
"어."
"태형아."
"방금 그 말, 정답이야."

"미안해. 미안해, 태형아."

"날 좋아해서 그랬다고? 아니. 넌 네 생각만 한 거야, 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한 거라고. 네가 진짜 나한테 미안했으면 이럴 수는 없어. 들키기 전에 그만두기라도 했겠지."

"......."

"넌 끝까지 너만 생각한 이기적인 새끼야."


정국을 두고 간다. 이미 화는 날 만큼 나고, 정국의 말도 듣지 않고 마음은 더 보지 않으려 한 태형이 그대로 돌아서서 교실로 돌아간다. 그 모습에 정국이 무너질 듯 주저앉아버린다. 쪼그려 앉아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애써 크게 뱉으면서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려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으니까.


혹시라도 태형에게 들키는 날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칠판맨이 되고 난 이후로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런 일 아예 생각 못 한 것도 아닌데 막상 겪고 나니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 가슴을 파고든다. 미친 듯이 아파져 오는 가슴에 이를 악물어보지만 이미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휑하니 사라진 태형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


한숨이 절로 나오고, 욕설도 저절로 나온다.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닌데. 언제까지나 친구로라도 곁에 있으면서 항상 같이 있는 거였는데. 그런 사이라도 좋으니까 그냥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 왜, 대체 왜. 아니, 모순인가. 친구로 충분히 만족했다면 그런 짓은 안 했을 테니까.


아무리 정국이 지금 있는 장소가 조금 외졌다고는 하지만 복도 구석에 있는 교실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충분히 보인다. 윤기가 있는 반은 3학년 중에서도 가장 끝반에 가까운 만큼 복도 끝 구석에 처박혀있고, 그래서 윤기가 교실로 돌아가서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다 인상을 찡그린다. 저 새끼, 결국 잘되지는 않은 모양이네. 건물이 높은 만큼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주저앉아있는 정국의 정수리를 가만히 보다가 턱을 괴었다. 이거 괜히 미안한걸.


그래도 귀찮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서 푹 엎드려 잠을 청하는 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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