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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흔한 18세 남고딩의 로맨스 데이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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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흔한 18세 남고딩의 로맨스 데이 06

W. 국빛


도대체 나는 전생에 무슨 업을 그렇게 쌓았을까. 나라를 팔기라도 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시련과 고통을 받을 수 있는 건가. 원래 인간에게는 각자 평생을 살아가면서 정해진 만큼만 행복하고 불행하다던데, 나의 신은 그렇게 두지 않으셨나 보다. 아마 남들보다 더한 고통과 번뇌의 늪에 빠지게 할 생각인가 보다. 지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정말 나는 전생에 큰 잘못을 한 게 틀림없다고. 버뮤다 삼각지대의 가장 중심에 앉게 된 것도 모자라서 아직까지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정국과 태형 사이에서 지민은 딱 죽을 맛이었다. 정해진 만큼의 불행과, 그게 너무 괴롭지는 않아서 죽기 전까지만 힘들게 한다더니 그건 다 뻥이었어. 차라리 여기서 세상을 등지는 게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 순간에 드는 생각은 윤기가 제안했던 바로 그 방법. 제 앞에 앉은 태형의 등을 쿡쿡 찌르자 자다 일어난 태형이 날렵하게 빠진 턱을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왜애.... 나 졸려."
"야, 너 여자 소개받을래?"
"엉? 이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뭐래."


하암. 졸린데 깨워서 개소리하고 있어. 다시 엎드리려는 태형을 한 번, 그리고 제 곁의 정국을 한 번. 정국이 지민을 곧 때려죽일 기세로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이상 말하면 널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저 얼굴을 보아하니 앞으로 한 3일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설치겠구나. 진짜 민윤기 말을 믿어도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태형이 눈을 두어 번 비비더니 지민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런 후에 지민의 책상 위로 반쯤 엎드려 팔에 턱을 대고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물었다.


"....예쁘냐?"


그 말에 정국의 눈썹이 또 꿈틀, 올라간다. 말은 안 하는데 오히려 말 안 하고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는 게 훨씬 무섭다. 차라리 불처럼 화를 내면 덜 무서울 것을 나중에 태형이 이 자리를 벗어나고 나면 그러자마자 정국이 지민을 상대로 헤드록을 걸어올 것 같다. 왠지 가뜩이나 좁은 내 자리가 더 좁아지고 그 옆에 새로운 금을 더 그어댈 것 같다. 하지만 안 된다. 여기서 굴하면 안 된다. 윤기는 그 이후에, 정국이 어떠한 반응을 보여도 끝까지 밀어붙이라고 했으니까!


"어, 어? 응. 당연히 예쁘지. 근데 내가.... 여자 사진은 없고, 아무튼 엄청 예뻐! ㅁ, 몸매도 잘빠지고! 성격도 좋아!"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씨이발. 사실 그런 완벽한 여자가 있으면 김태형에게 소개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가져버렸지. 아주 그냥 내 우리 안에 가둬서 여왕처럼 떠받들고 살 거야. 지민의 주변에 그런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냥 생각나는 만큼 떠드는 거지. 사실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지민이 먼저 열심히 작업을 걸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속임수가 제대로 먹혔는지 태형은 꽤 흥미가 생긴 듯 지민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고, 지민은 되는 대로 말을 꾸며내면서 등 뒤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데 정국이 인상을 확 찡그린 채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책상을 내리찍었다고 해야 더 맞는 말일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길쭉하게 뻗은 두 다리가 책상 위로 뻗어지고 정국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인상은 저기 뒷골목 양아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의 험악함을 보이면서 어디 더 이야기하려면 해 보아라, 하는 그런 태도로. 그런 모습을 태형이 흘끗 보더니 뭐야? 하면서 다시 지민에게 가상의 여자에 대한 것을 물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던 정국이 입술을 질끈 문다. 그리고 '그 여자는 있지, ㄱ, 그러니까....'하던 지민의 말을 뚝 자르고 손으로 지민의 입을 텁 막아버린 후 태형에게 쏘아붙였다.


"씨발, 진짜."
"너 왜 그러냐? 손 치워 봐. 지민이랑 얘기 좀 하게."
"내가 너한테 존나 큰 잘못을 한 건 맞는데.... 너, 진짜 너무한다."
"뭐?"
"정말 너무한다."
"뭐라는 거야!"


정국이 벌떡 일어나 신경질을 내고서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러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지민이 입을 꾹 다물고 태형은 뒷모습을 보다가 그 모습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이마를 덮고 있던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뒤로 넘어갔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올 때야 태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가 버럭 화를 냈다.


"잘못한 건 전정국인데 왜 내가 저런 말을 들어야 하지?"


나라도 화났겠다, 인마. 사실 윤기로부터 이 모든 것의 전후 사정을 다 들은 지민인지라 정국이 왜 저렇게 나가는 건지 다 알고 있다. 내가 전정국이었어도 화가 나고 괴로웠을 것이다. 아주 어렵게 좋아한다고, 상황이야 개떡 같았지만 어쨌거나 진짜 어렵게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런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을 소개받겠다 하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타고 짜증 났을까. 머릿속으로는 김태형이 다른 사람이랑 있는 걸 상상하면서 얼마큼 화를 내고 있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땐 그냥 다 없애버리고 싶었을 텐데. 전정국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이번엔 네가 잘못했다, 태형아."
"왜? 내가 뭘 잘못했어?"
"너 같으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네 앞에서 다른 사람 만난다고 하면 좋겠어?"
"네가 소개해 준다고 했잖아."
"아, 그거 다른 이유 때문이야. 소개 안 해 줘. 없던 일로."
"야!"


결국 태형의 간절함은 통하지 않았는지 지민은 소개해 주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 없어서 못 해 주는 거지만. 정국은 수업시간이 다 됐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로 땡땡이. 이제 짝이 된 지민이 그다음 시간의 선생님에게 정국이 아파서 보건실에 갔다고 해 주지 않았으면 아마 그대로 땡땡이 처리. 돌아오지 않는 정국에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딱히 걱정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태형이 아무리 만인에게 다 잘하는 사람이라지만 정말 한 번 아닌 건 영원히 아닌 구석도 있었으므로 그냥 땡땡이인가 보다, 하는 생각 정도만 했다.


정국이 돌아온 건 두 교시가 더 끝나고 난 이후였다. 그것도 사실 교실에 돌아온 게 아니라 다른 이의 목소리를 통해서 알게 됐지만. 어째 자꾸만 잠을 설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진 태형이 이유를 찾고 있는데 역시 남학교라 그런가 유난히 싸움이 나면 더 시끄러웠다. 수컷들끼리 힘자랑하고 다니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왜 저렇게 호들갑인지, 평소에도 시끄럽기로 소문났던 녀석이 교실 앞문을 벌컥 열고 크게 소리쳤을 때야 엎드렸던 태형의 고개가 들렸다.


"야! 싸움 났다!"
"어디? 누가 싸움? 구경 고고!"
"화장실에서 김진태랑 전정국 싸운다!"


....뭐라고? 누구? 제 귀를 의심하고 태형의 상체가 점점 들렸을 때 지민 역시 놀란 듯 태형의 등을 쿡쿡 찌른다. 태형 역시 적잖게 동요한 듯 동공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데 지민의 가 보자는 말에 얼른 일어나 헐레벌떡 문제의 화장실로 뛰었다. 어차피 화장실이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 금세 도착했는데, 이미 구경꾼들은 시장통만큼이나 북새통을 이루고 비구름만큼이나 많이 모인 사람들이 안의 상황을 전해 듣거나 직접 보고 있었다. 그 사이를 파고들자 다들 태형을 보면서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게 영 수상해서 더 서두르다 주변에 있던 녀석 한 명을 잡아서 태형이 물었다.


"야. 쟤들 왜 싸웠대?"
"어.... 나도 잘 몰라. 그런데 애들이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너 때문이래."
"나? 왜?"
"김진태가.... 너를 두고 좀 안 좋은 말을 했나 봐. 나도 그것밖에 몰라."
"어, 그래. 고맙다."


아오, 저 병신 새끼. 누가 내 뒷담 좀 할 수 있는 거지. 고작 그런 걸로 사람을 쥐어 패고 있어! 안 그래도 정국이 가끔 다혈질처럼 나올 때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이미 화장실 안에는 정국과 진태만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진태는 멱살을 잡혀서 정국의 아래에 깔려 끄응, 앓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김진태는 이미 입가가 다 터지고 얼굴이 부어 멍이 새파랗게 든 얼굴. 그에 못지않게 입가가 심하게 터진 정국의 얼굴을 보고서 태형이 얼른 그 몸을 붙잡았다. 팔 두 쪽이 전부 태형에게 잡혔어도 여전히 발길질해댄다.


"놔, 씨발! 놓으라고! 저 새끼 죽여 버릴 거야!"
"그만해, 미친놈아! 더 때리면 쟤 진짜 죽어!"
"죽으라고 해. 야, 너 다시 지껄여 봐. 아까 했던 말 다시 말해 봐!"
"왜.... 네가 그렇게 싸고도는 그 김태형 오니까 더 빡 치냐? 씨발, 김태형 좀 따먹겠다고 했다. 그 말 하나가 존나 열 받는 거 보면 진짜 너희 사귀냐? 더럽게."


얼굴은 이미 있는 만큼 다 쥐어 터진 주제에 말은 잘한다. 들리는 말에 태형의 인상도 그리 좋지는 않다. 뭘 따먹어? 저게 나를? 내가 무슨 과일도 아니고 따먹긴 뭘 따먹는다고 지랄인지. 생각으로는 이 야수 같은 전정국의 팔을 다시 놓아 주고 저걸 죽어라 팰 수 있게 하고 싶지만 지금도 충분히 일이 커진 상태에서 더 커지게 하면 정국은 틀림없는 정학이다. 상황에 따라서 쟤 부모님이 와 따지기라도 하면 최악의 경우 저렇게까지 곤죽이 되게 때려 놨으니 퇴학을 시켜라 말아라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므로 태형이 애써 낑낑대며 정국을 화장실 밖으로 쫓아낸다. 그리고 화장실 출입문을 탁 닫아 잠궈버리고 진태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야. 나 과일 아니야. 따먹는다는 말은 과일 딸 때나 쓰는 말이라고. 한 번만 더 그런 더러운 말 지껄이면 내가 너 가만 안 둬."


평소에 말을 조금 횡설수설하거나 가끔 더듬는 버릇이 있던 태형이었는데 이럴 땐 더듬지도 않고 또박또박 잘도 했다. 표정 역시 약간 웃는 것 같은데도 잘 보면 서늘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진 몸을 보고 생긋 웃더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그대로 퍽! 진태의 아랫도리를 한 번 걷어차자 '아악!' 하는 화장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오자 저만치에서 학생 주임이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어떤 새끼가 싸우냐!"


순식간에 모세의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학생들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학생 주임이 뛰어와서 진위를 파악하고 있었다. 화장실 바닥엔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보글보글 게거품을 물고 있는 학생이 한 명, 그리고 주변에 얼굴 터진 다른 학생이 한 명. 거기에 노한 학생 주임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둘 다 학생부실로 따라오라며 으름장을 놓고 먼저 앞장서 걷는다. 씩씩거리는 모습에 태형이 곤란한 듯 쓴웃음을 짓다가 정국을 본다.


눈이 마주쳤다. 분명 시선이 닿았다. 그런데, 그런데.... 정국이 너무 차가운 눈으로 태형을 본다. 마치 모르는 사람인 양. 아니,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차가울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의 냉기가 그대로 서린 눈동자 속엔 아주 잠시 태형이 비치다가 곧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학생 주임의 뒤를 따라가는 정국의 뒷모습 너머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가는 길마다 복도에 피가 떨어지는 게, 정국의 피인지 정국에게 얻어맞은 놈의 피인지 몰랐다. 손으로부터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는데 태형이 인상을 쓴다. 시선 한 번 마주하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 모습이, 저더러 정말 너무하다며 돌아섰으면서 또 남이 제 욕을 했다고 죽기 전까지 두들겨 팼다는 게.


....상당히 모순적이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프다.


왜 그런 거야? 정말 내가 너무했다면,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저놈이 내 욕을 하든 내 조상을 욕하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때렸어. 왜 때리고 나서 나한테는 그리 차가운 시선을 줘. 어렸을 때부터 정국을 알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정국이 화내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 금방 풀리기도 했고 저렇게까지 얼음처럼 차갑게 자신을 대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도 태형의 마음이 더.... 좋지 않다. 그리고 역시 건물의 맨 위층에 있는 게 3학년 교실. 그러므로 맨 아래층에 있는 교무실로 가던 윤기와 호석은 2학년 복도가 엄청 시끄러운 걸 보고 구경 왔다가 한 명은 놀라고, 한 명은 흐응. 하고 씩 웃는다. 아, 물론 웃은 쪽이 민윤기다.


"쟤네.... 2학년 또라이 아니냐?"
"어."
"유명한 만큼 또라이 짓도 야무지게 하는구나. 싸움박질도 대차게 하는구만."
"호석아. 너 먼저 교무실 가라. 나 저 또라이 알아."
"이런 씨! 야, 우리 교무실 가서 들고 올 거 많은데? 나 혼자 다 못 들어."
"금방 갈게."


씨.... 툴툴거리면서 알겠다며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호석을 배웅하고 태형에게 다가온 윤기가 묻는다. 야. 쟤네 왜 싸웠냐? 그러자 태형이 자세한 건 생략하고 그냥 쟤가 내 뒷담 까서 정국이가 때렸대요, 까지만 이야기하자 듣고서 피식 웃는다. 역시 전정국은 별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태형에게 물었다.


"근데 전정국 나오고 너 들어갔을 때 소리 지르는 것 같던데. 그거 네가 지른 거냐?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그거 제가 때린 건데요?"
"어딜 어떻게 때렸길래 지옥에서부터 들릴 법한 소리가 들리냐...."
"아, 여기 때렸거든요. 여기."
"여기?"


태형이 빙긋 웃는다. 그리고 고개를 아래쪽으로 내려 하체를 바라본다. 남자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그곳. 종족 번식의 의무를 다하게 해 주는 급소. 거기에 시선이 머무르자 아.... 윤기가 모두 알았다는 듯 얼굴이 조금 파랗게 질렸다. 속으로 명복을 빈다. 김태형의 손이든 발이든, 아무튼 김태형으로 인해 죽었을 너놈의 수억 마리 정자들이여, 잘 가요.... 같은 남자로서 그 고통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구나. 쯧, 혀를 차고 있자 태형이 씁쓸하게 웃는다.


"....정국이가 더는 절 안 보려나 봐요."
"왜?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걔랑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고 자라왔지만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서 날 보더라고요. 그리고.... 가 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화를 낼 건 걔가 아니라 너 아니냐? 왜 걔가 그런대."

이미 여자 이야기가 나왔다는 거 다 알면서, 그래서 정국이 삐쳐서 나가버렸다는 지민의 카톡을 받아 다 알면서 일부러 묻는다.

"글쎄요.... 근데 선배."
"어."
"이거.... 생각보다는 더 아픈 것 같아요."
"너도 맞았냐?"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냥...."


그냥, 마음이 조금 아픈 것 같아요. 사실 좀 많이. 정국이의 그런 얼굴을 처음 봐서, 차갑게 날 두고 갈 길을 가 버리는 정국이가 밉기도 하고 그 뒷모습이 슬프기도 하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전정국이 아까 교실에서 나갈 때부터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정작 이제 날 외면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아픈 건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모습이라 더 그런 건가. 다른 사람은 다 그렇다 쳐도 정국만큼은 절대 자신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언제까지고 같이 있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너무 익숙해서.


언젠가부터 정국이 태형을 믿고 좋아라하고 늘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항상 그래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언제부터 당연하게 여기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 줘서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그냥.... 익숙했는데. 익숙했던 게 사라져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까?


태형은 도통 알 수 없었다. 정국이 왜 저러는 건지, 왜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도 아픈 건지. 힘든 건지. 그 차가운 표정 하나에 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그리고 그때 정국이 했던 말이 스쳐지나간다.


'가지 마. 너 이렇게 나한테서 등 돌리고 가 버리면 난 어떻게 해야 돼.'


....나야말로 어떻게 해야 하냐?


답은 돌아오지 않을 텐데 애써 허공에 대고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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